message-from-blizzard
여러분 안녕하십니까.프랭크와 저는 전 세계에서 우리 게임을 즐겨주시는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오늘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 있어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오늘로서 회사가 2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멋진 일이지요.1991년에 회사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직원은 겨우 세 명뿐이었습니다.이 자리를 빌려 이렇게 오랫동안 블리자드를 지지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게임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겁니다.
블리자드와 우리 게임을 위한 커뮤니티가 생겨났다는 사실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세계 곳곳에서 우릴 지지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여러분 덕분에 우리 게임이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게임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공유하고, 또 심지어 우리 자신보다 더 높은 품질을 요구하는 커뮤니티 여러분과 함께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게임에 대한 여러분의 열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계속 들려주세요.여러분의 의견 덕분에 우리는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모두의 기대를 뛰어넘는 멋진 제품으로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blizzard-retrospective
애플2 컴퓨터 시절부터저는 게임을 즐겼습니다.아주 어렸을 적에 제 꿈은우선 사탕 공장 사장이 되고 싶었어요.그때 가장 좋아했던 영화가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이었거든요.또 게임 가게 사장이 되고도 싶었죠. 그게 아마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하지만 그게 블리자드로 발전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사실 게임을 만드는 일이 즐거울 거로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대학교에서 잘나가던 친구 두 명을 설득해서 끌어들였지요. 그렇게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UCLA 졸업반 시절에 앨런을 만났습니다. 제가 듣는 수업 두 가지를 이 친구도 함께 듣고 있더군요.어느 날 앨런과 저 모두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일찍 강의실에 도착했어요.컴퓨터 구조 수업이었는데,그 친구를 보니 꽤 똑똑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이스라엘 사람처럼 보여서, 이스라엘 어디 출신이에요?라고 물었죠.그 친구는 당황한 표정으로 절 보더니뭐라고요?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어디 출신이냐고요?라고 다시 물었어요.그러니까, 아, 이집트 출신이에요.라고 하더군요.그건 기억이 나지 않네요. 어쨌든 그건 마이크 생각이고요. 제가 기억하기에는 우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어요. UCLA의 한 컴퓨터 연구실에서요.커피를 가져오는 김에 화장실까지 가려고 일어나면서 제가 쓰던 컴퓨터를 잠금 상태로 설정했지요.그리고 화장실에 다녀와서 자리에 앉아암호를 입력했어요.잠금이 풀리고 전 다시 작업을 시작했지요.그런데 그때는 모르는 사람이었던 마이크가 옆에서 날 보며 그러는 거예요.어, 어떻게 한 거예요?그래서 저도 물었죠. 저기, 뭐 말이죠?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쪽이 자리를 비운 동안 컴퓨터가 자동으로 잠금이 풀리더군요.그래서 제 암호를 써서 다시 잠가뒀거든요.알고 보니, 정말 놀랍게도 마이크와 제가 같은 암호를 사용하고 있더라고요.그걸로 컴퓨터를 잠갔고요.마이크가 저보다 한 3개월 먼저 졸업했어요. 6개월 정도인지도 모르겠네요. 우리에겐 계획이 있었죠.그 친구는 여기 어바인에 있는 웨스턴 디지털에서 일했어요.그 친구는 제가 직장이었던 웨스턴 디지털을 떠나서자기와 함께 게임 회사를 차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부모님께서 많이 서운해하셨죠. 특히 그 친구 아버님이요.정신 나갔다고 생각하셨죠. 든든한 직장을 떠나서22살짜리 코흘리개와 사업을 한다니 말이에요.하지만 이제 그 친구 아버님도 그게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할머니께 15,000달러를 빌렸어요.10,000달러를 회사에 투자하고, 은행에 5,000달러를 저축했죠.그리고 그 후 2년 동안 그 돈으로 버텼죠.프랭크도 비슷했어요. 같이 컴퓨터 공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요... UCLA에서 컴퓨터 공학과에 다녔습니다. 그동안 아는 사람을 통해 앨런 애드햄을 만났어요.참 다행이었죠. 우리는 같이 인공지능 수업을 들었는데,너무 지겹더군요... 그래서 전 자주 수업을 빼먹었지요.그 시간에 학생회관에 가서 비디오게임을 하곤 했어요.거기서 그 친구를 항상 만났습니다.그 친구도 같은 인공지능 수업을 들었습니다.그런데 수업 첫날에 한 번 보고, 그다음에는 시험 때나 가끔 얼굴을 볼 수 있었어요.우리 둘 다 수업을 빼먹고 비디오게임을 했었거든요...전 어렸을 때 항상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전혀 몰랐죠. 앨런도 저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는데그 친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앨런이 졸업한 직후에 우연히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어요.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프랭크, 내가 다음에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말해줄게.너도 함께했으면 좋겠어. 그러더니 함께 컴퓨터 게임을 만들자고 하더군요.당시 일하던 락웰 사를 떠나 앨런과 함께 일하기로 했죠.그때 처음 마이크 모하임을 만났어요.우린 첫날 함께 책상을 만들었어요. 매우 좁은 사무실이었지요. 55제곱미터 정도 됐으려나요? 곧바로 우린 아미가하고 맥의 게임 타이틀을 이식하기 시작했어요.이 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죠.그때까진 컴퓨터 게임용 코드를 한 번도 짜본 적이 없었거든요.나중에 참고할 수 있는 코드 기반이 되어 준 거죠.어떤 프로젝트를 하든지 상관이 없었어요.일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고마음 내키는 대로 무엇이든 배울 수 있었으니까요. 처음에는 회사 이름이 실리콘 앤 시냅스였어요.실리콘은 컴퓨터의 구성 요소였고 시냅스는 사람의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였죠... 컴퓨터, 뇌, 창의성, 기술, 아무도 이런 걸 알아차리지 못하더군요...전화 통화를 할 때면 상대방이 그러더군요.그거 가슴 성형에 쓰는 보형물 아닙니까? 그리고 시냅스는 대체 뭐요?처음에 우리가 생각했던 건, 그러니까 똑똑하고 열정적이며 게임을 좋아하고게임 개발에 대해 배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는다고 했던 건,그냥 끝내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거였어요. 아주 간단했지요.가장 중요한 조건은 아주 멋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였어요.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고, 게임을 즐기고...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조건이었죠.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이 출시되기 전의 블리자드는직원들이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 줬어요...우리가 채용한 첫 3D 아티스트는 조이레이 홀이었어요.또 초기에 우리가 채용한 아티스트 중에는 샘, 그러니까 샘와이즈도 있었죠.신문에 난 구인공고를 봤어요. 게임용 그림을 그립니다라고 했더군요. 그게 전부였어요. 아주 딱딱했지요. 아마 프로그래머가 썼을 거예요.컴퓨터 프로그래밍 담당으로는 게임과 코드 개발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을 찾았어요.밥이 들어왔습니다. 던전 앤 드래곤 팬이었고 훌륭한 프로그래머였지요... 태즈매니아 데블 캐릭터와 함께 유독성 폐기물을 좋아합니다라는 문구가 써진 티셔츠와반바지, 샌달을 신고 면접에 나왔죠.아마 여기 세 사람은 그게 마음에 들었나봐요...면접을 보러 왔는데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접수원이 앉아 있더군요.프랭크 피어스라고...그 당시 제가 사무실 전화를 받았어요. 솔직히 제가 전화받는 일에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지요.그렇게 친근한 성격이 아니니까요. 입을 열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래, 뭘 도와줄까?제가 말했죠. 앨런 애드햄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앨런은 회의 중이야. 잠깐, 마이크한테 물어보지.그렇게 마이크를 만났습니다. 제 포트폴리오를 보더군요.제가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뒀던 그림들 전부였어요.커다란 상자에 몽땅 집어넣고 가져온 거였지요.마이크는 그걸 앨런에게 보여주더니 제게 일자리를 주더군요. 락앤롤 레이싱 개발에 참여하게 됐죠.슈퍼 패미콤 용이었어요. 회사에서 처음 만들었던 RPM 레이싱을새롭게 만든 버전이었고요.제 기억으로는 미국 게임 개발사 중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슈퍼패미콤 용으로 게임을 개발해서 출시했었어요.말 그대로 일어로 된 참고 문서를 보면서 개발했지요.락앤롤 레이싱... 그 게임에는 참여하지 않았어요.처음 시작했을 때는 평범한 자동차 경주 게임이었어요. 그때까지 만들었던 RPM 레이싱을 조금 개선한 수준이었지요.재미있기도 했어요. 우린 자동차 경주 게임에는 신나는 음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락앤롤 레이싱 전에는록 음악을 게임에 사용한 적이 없었어요.저는 6502 CPU 용 어셈블리어로락앤롤 레이싱 게임 프로그래밍을 했어요.음하하하우주선과 외계인도 집어넣었고온갖 종류의 레이저 자동차도 추가해서조금 더 쿨한 게임으로 만들었지요.그 게임에도 블리자드 스타일을 덧붙였어요.일반적인 자동차가 아니라 레이저와 총이 장착된 로켓 자동차를 만들었지요.그럴 뿐만 아니라 게임 자체도 아주 괜찮아서락앤롤 레이싱 은 그 해 최고의 자동차 경주 게임으로 선정됐어요.제가 본격적으로 참여한 첫 슈퍼패미콤 게임은 로스트 바이킹이었습니다. 거의 전 직원이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지요.처음 로스트 바이킹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조종할 수 있는 바이킹이 백 명 정도 있었어요.사다리를 올라가는 바이킹, 횃불을 던지는 바이킹도 있었죠.PC 게임과 같은 방식이었어요.레밍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까요.그 왜 조그만 레밍들을 잔뜩 조종하는 PC 게임 있잖아요. 레밍들이 화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그런데 슈퍼패미콤용 게임이니까 조금 쉽게 바꾸기로 했죠. 캐릭터 수를 다섯 명까지 줄였다가, 다시 네 명으로 줄이고,결국 세 명으로 결정했죠.하지만 퍼즐과 레벨 디자인은 아주 다양했어요. 그리고 전보다 더독창적인 부분을 많이 집어넣었지요. 로스트 바이킹에서 제가 맡은 부분은게임 속 퍼즐과 레벨 디자인이었어요. 이런 디자인을 할 때는 마이크 모하임이 직접 만든 CED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했죠.CED는 셀 편집기의 약어인데, 그게 블리자드에서 제 첫 프로젝트였어요.C++ 프로그램이었어요. 조르텍 C++로 모두 작성했고,그러면서 C++ 프로그래밍을 배웠죠.그리고 지도 편집기의 시초이기도 했어요.나중에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에서도 사용했고,이후 게임에도 마찬가지였지요.그게 PC용 게임의 미술 스타일을 블리자드 미술 스타일로 발전시키는 첫 걸음이었습니다.다소 만화 같은 스타일이지요. 게임기 시장에서는 더 사용하기 좋았어요.로스트 바이킹은 그해 최고의 퍼즐 게임으로 선정됐지요. 락앤롤 레이싱이 최고의 레이싱 게임으로 선정된 것과 같은 해였어요. 그렇게 약 20명의 직원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회사가 그 해 최고의 게임 7개 중에서2개 자리를 차지했지요.게다가 그 당시에 우리는세가와 닌텐도, 코나미, 캡콤 같은 회사와 경쟁하고 있었는데 말이죠.최고의 게임 7개 중에서 2개를 동시에 차지한 건우리가 유일했던 것 같습니다.저는 블랙쏜의 선임 프로그래머였습니다. 당시 우리가 제작했던 게임 중에서멀티 플레이어 기능이 포함되지 않은 몇 가지 중 하나였지요.당시 우리가 꽤 재밌다고 생각했던 몇몇 멋진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퍼즐 게임과 슈팅 게임을 잘 섞어놓았고요.블랙쏜에서 처음으로 로토스코프 기법을 사용해 봤습니다. 실제로 프랭크 피어스가 뒷골목으로 나가서나뭇더미를 뛰어넘거나, 이리저리 달려 보기도 하고,또 사다리를 올라가는 모습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그렇게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그렸습니다. 조금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느낌이 들어서결국 멀고 먼 행성에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더러운 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주인공이 왕자라고 설정했어요. 왕자들이 다들 그렇듯 산탄총을 갖고 있었죠. 개발은 꽤 빨리 진행됐어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블랙쏜을 만들 당시를 생각해 보면, 재밌었던 일이 생각나네요.아티스트 두 명이 캐릭터 디자인을 맡았는데요,두 사람 모두 머리 모양이 길고 지저분했어요.블랙쏜의 주인공을 포함해서 모든 캐릭터 모습을 보면,머리가 그렇게 길고 지저분하지요.우와, 아티스트들이 자기랑 똑같은 게임 캐릭터를 만들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죠. 그래서 아티스트 중에서도 다양성이 갖춰져야, 어떤 프로젝트를 하든 캐릭터 디자인에 다양성이 생길 거로 생각했어요.또 재미있었던 일 한 가지를 들어보자면, 유럽 지역에서는 이 게임 제목을 블랙쏜이 아니라 블랙호크로 바꿔야 했어요. 알고 보니 유럽에서 정말 유명한 맥주 상표 중에 블랙쏜이 있더군요. 우리가 게임 제목을 버드와이저로 붙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죠초기에는 저작권 사용료가 거의 회사를 먹여 살렸습니다. 우리가 제작한 게임이나 이식한 게임들의 사용료였죠.하지만 때로는 월급이나 기타 비용을 낼 돈이 아예 없었던 적도 있었어요.회계장부만 보면 단 두세 달만 기다리면 완전히 흑자로 돌아설 것만 같아 보였는데도 말이죠.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여유자금이 쏟아져 들어올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그런 적은 없었어요.마이크와 저는 다른 사람들이 게임 개발 외의 일에는 신경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디스커버리 신용 카드로 슈퍼마켓 캐쉬백을 이용하면 무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그래서 근처 상점에 가서 신용 카드로 현찰을 모았고, 그걸 은행 계좌에 넣어서 직원들 월급을 줬죠.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사실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아슬아슬하게 월급을 못 줄 뻔한 위기가 항상 찾아왔거든요.일부 직원만 아는 사실이지요.그걸 아는 사람들은, 우리 임원진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됐죠. 그래서 그 사람들 밑에서 평생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초기에는 그렇게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놀라울 만큼 정말,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점점 커져서 신용 카드 대출로는 감당할 수 없을 수준이 되더군요.그때 우리는 부모님을 찾아가서, 각각 2만 달러를 은행 계좌에 입금해 주십사 부탁 드렸습니다. 전부 하면 4만 달러였지요.그리고 우리는 회사를 데이비슨 앤 어소시에이츠에 매각했는데, 그때가 4만 달러의 신용 한도를 초과하기 직전이었어요. 처음 몇 해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죠.그때까지 우리는 다른 회사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게임을 제작해 주는 외부 개발사였지만, 점차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어요.로스트 바이킹처럼 우리만의 컨셉트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하는 공동 개발사 단계로넘어가고 있었죠.그때 우리는 자체적으로 게임을 퍼블리싱하기로 결정하고, 워크래프트 개발을 시작했어요. 물론 유통망을 가진 기존 퍼블리셔가 게임을 출시하긴 하겠지만, 제품 포장 단계까지를 직접 맡고 싶었죠. 마케팅을 우리가 담당하고, 또 우리 이름이 제품 상자 전면에 찍히게 하고 싶었어요.그 과정에서 밥과 잰 데이비슨을 만났어요. 우리가 실리콘 앤 시냅스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키드 웍스라는 우리 제품을 Windows 용으로 이식하려 했던 때였어요.실리콘 앤 시냅스가 그 일을 맡았죠. 예산을 초과하지도 않고, 제 때에 일을 마치더군요.데이비슨 앤 어소시에이츠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 실리콘 앤 시냅스에 대해 들었습니다.재미있게도, 제가 입사하자마자 맡은 일은 데이비슨이 주목하고 있던 이 작은 회사와의 계약을 위한 정밀심사였습니다. 우리 회사가 교육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이 점점 더 커지고 있던 때였는데,오락용 PC 소프트웨어의 시장 규모 자체가 훨씬 더 컸기 때문에 그 회사를 인수하고 싶었죠. 어느 날 밤에 밥이 앨런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얼마면 되겠습니까?앨런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했어요. 말도 안 됩니다. 너무 비싸요. 라고 말을 들을 거로 생각했죠. 그런데 밥이 그냥 알았다고 해버린 거예요.당시 우리는 상장 기업이었기 때문에 그럴 여력이 충분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 회사에서 매각 의사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어요. 아마 인터플레이가 먼저 제안했거나, 아니면 다른 소규모 개발사 여럿을 한꺼번에 인수하려고 접근했었을 것 같네요.인터플레이가 당시에는 가장 잘나가는 회사였어요. 아주 끝내주는 회사였고, 또 능력 있는 사람도 많았죠.뭐, 인터플레이는 실리콘 앤 시냅스와 기업 문화가 비슷하니까 인터플레이 쪽이 더 잘 어울리겠구나.라고 생각했죠.반면에 우린 모두 성인이었고, 실리콘 앤 시냅스에서 원했던 건 회사 업무의 사업적인 측면을 잘 아는 성인이었어요.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해온 일을 그대로 하십시오. 당신들은 게임 만드는 일을 아주 잘하고, 우린 교육용 소프트웨어 만드는 일을 아주 잘합니다.우리가 귀사의 판매와 유통을 책임지겠지만, 변하는 건 없습니다. 하던 일을 그대로 하세요.라고 말이죠.이 친구들은 창의적이었어요. 창의적인 재능은 통제할 수 없어요. 하고 싶은 데로 내버려 둬야 하지요.아니, 창의적인 것 이상이라고 하고 싶네요. 소비자들을 이해하고 있거든요. 그들이 바로 소비자니까요. 결국 금요일에 앨런이 전화로 말하더군요. 있잖아요, 당신 회사는 정말 매력적이에요.하지만 알다시피 우린 인터플레이와도 꽤 오랫동안 일을 같이했는데, 아무래도 그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그리고 잰이 얼마 뒤에 내 사무실로 들어오더군요. 난 말했죠. 실리콘 앤 시냅스 친구들이 인터플레이로 가기로 했답니다.그녀가 묻더군요. 정말요? 제가 앨런하고 얘기 좀 해 봐도 될까요?제가 그랬죠. 마음대로 하세요. 그녀는 그렇게 했고요. 그때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잰이 설명할 겁니다.제가 전화로 말했죠, 큰 실수하시는 겁니다.그러니까 이렇게 답하더군요. 우리 모두 여기 모여서 사상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어요.그래서 제가 그랬죠. 정말 큰 실수를 했으니, 고민 좀 더 하세요.다음 주 월요일에 앨런이 전화해서 말하더군요. 잰이 한 말에 대해 주말 내내 고민하느라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전 생각했죠. '거 참 잘 됐네' 마지막엔 그러더군요. 있잖아요, 우린 성인들이 필요합니다. 데이비슨의 직원들이 지닌 사업적 감각이 필요해요.그래서 생각을 바꿨어요. 데이비슨 앤 어소시에이츠로 가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우리가 만드는 게임의 창의적인 면을 우리가 전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해 줬어요.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가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 줬고요. 큰 조직의 자회사로서 이렇게 자율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독특했다고 생각합니다.블리자드가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내버려 두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조건은 딱 한 가지였어요. 잘 돌아가기만 하면 내버려 둬라.잘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슨 조치를 해야 했을 거예요. 하지만 항상 괜찮았어요. 잘 돌아가지 않는 때가 없었죠.아, 회사 이름을 적어도 실리콘 앤 시냅스보다는 나은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날 앨런이 결정했지요. 회사 이름을 바꿔야겠어.일종의 브레인스토밍을 한 끝에 케이어스 스튜디오로 결정했어요.우리 개발 과정을 아주 잘 보여주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우리 개발 과정은 여전히 그렇게 혼란스럽거든요.많은 사람들이 차우스나 채즈라고 알아듣더군요.그런데 어느날 케이어스 테크놀로지스라는 회사에서 전화를 받았어요.플로리다에 위치한 회사였는데, 요약하면 이렇게 말하더군요. 야, 우리가 케이어스라는 이름을 이미 쓰고 있거든? 그거 계속 써도 좋은데 말야그 대신 사용료로 10만 달러를 내야겠어. 그래서 우린 답했죠. 아, 알았어. 됐어. 다른 이름을 고르지, 뭐.합병한 후에 바로 있었던 일이었어요. 앨런이 전화를 하더군요.큰 회의를 열어서는, 케이어스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꿔야 한다고 하더라고요.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오우거 스튜디오는 어떨까 싶더군요.뭐, 그때 우린 이미 데이비슨 앤 어소시에이츠의 자회사였기 때문에앨런이 잰 데이비슨에게 오우거 스튜디오라는 이름이 어떠냐고 물어봤지요. 그랬더니 아주 질색을 하더군요. 제가 말했죠. 아아, 으음, 재미있군요.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그다음 잰에게 전해줬는데, 잰은 듣자마자 아주 깜짝 놀라더군요. ...아이들에게는 그 이름이 조금 무서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더군요. 앨런에게 다시 전화해서 말했죠. 저기, 독립적으로 운영하게 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이거 조금 부끄럽네요.하지만 잰하고 우리 마케팅 담당자들 말이, 그 이름을 쓰면 사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네요. 사업에 대해서는 그 사람들이 전문가니까요.그래서 조금 더 친근한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지요. 어느 주말에 앨런이 사전에서 단어 7개를 뽑아왔어요. 하나는 미드나잇 스튜디오 였는데, 꼭 성인용 영화 만드는 회사 이름 같았죠. 또 하나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였는데, 아주 깔끔했지요.수준 이하의 이름과 끔찍한 이름들을 모두 거쳐 간 후, 다행스럽게도 블리자드라는 괜찮은 이름에 정착하게 됐어요.가슴 성형에서 오우거로, 다시 채즈에서 블리자드로 왔지요.한 100년쯤 전의 일인 것 같네요. 크리스 멧젠이라는 이름의 친구가 내 사무실에 들어왔어요.앨런이 회사 구경을 시켜주고 있었어요. 제 사무실 벽에 던전 앤 드래곤 제품이 잔뜩 걸려 있는 걸 보자마자 우린 딱 마음이 맞았죠. 괴짜들끼리는 통한다고 할까요.오래전에 밴드 활동을 하고 있을 때, 합주하던 중에 칵테일 냅킨인가 뭔가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친구의 친구 하나가 그걸 보더니, 야, 코스타 메사에서 아티스트를 구하는 회사가 있다더라.라고 하더군요. 어떤 회사인지도 잘 몰랐어요. 무슨 그래픽 아트 회사인 줄만 알았죠. 그래도 그림을 그리면 돈을 준다니, 꽤 괜찮겠는데?라고 생각했어요.그래서 금요일 아침에 차를 타고 가서는 조이레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남자를 만났지요. 그 친구가 처음 한 말은 이랬을 겁니다. 젠장, 뭐 때문에 왔는데?우린 그때 사람들과 친근하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어요.전화를 받을 땐 그랬죠. 뭐요? 그러면 앨런이 뛰어나와서 우리한테 소리를 질렀어요. 그런 식으로 전화를 받으면 안 돼! 전 그냥 알았어요. 그랬고요.그리고 전 제가 그린 그림 몇 장 책상에 올려놨는데, 그 친구가 가서 상사를 불러오더군요. 앨런 애드햄이라는 사람이었어요.그 사람이 나를 불러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지요. 일자리가 필요하냐고 묻기에, 바닥 청소라도 하겠다고 말했죠. 이 회사에 발을 들여놓고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이건 내 집과 같은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그 당시에는 기본적으로 아주 많은 괴짜가 여러 가지 게임을 하고, 헤비메탈과 로큰롤 음악을 듣는 그런 곳이었어요.장난도 많이 쳤지요. 장난감 총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사람도 많았어요. 자와 벽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작은 노란색 포스트잇 메모지 뭉치를 갖다 놨고, 누군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또 다른 사람이 처음으로 그림을 그렸죠. 자와처럼 말이에요. 하하, 재밌네. 자와야. 이렇게 말하면서요. 자와라는 이름을 갖고 이렇게 저렇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어요. 아티스트들이 모두 그림을 그렸는데, 그중에서 특히 커다란 아프로 머리 모양과 커다란 안경을 쓴 디자인이 눈에 띄었어요. 무진장 화를 내면서 손가락으로 욕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자와레이 홀이었죠. 정말 재미있었어요....그리고 고전적인 영웅들과 섞어서, 자와와 웨인이라거나,자왑티무스 프라임 이라고 이름을 붙여보기도 하고, 또 지프를 쫓아가는 자와 그림에 자와식 파크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죠.사무라이 쇼다운에서 따온 자완 푸도 있었고요. 자와를 발로 밟는 기타리스트 그림에는 자와와 페달이라는 이름을 붙였죠.벽 전체가 이런 그림들로 가득 찼었지만, 며칠 뒤에는 사라졌어요.아련한 기억이네요. 아직도 애틋한 마음으로 그 당시를 회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어요. 고마워요, 인사팀.게임기용, 그리고 또 이런저런 게임들을 잔뜩 만들던 때였어요.사람이 늘어나면서 회사가 조금씩 둔해지고 있었죠. 제가 블리자드에서 처음 참여했던 게임은 저스티스 리그 태스크 포스였습니다.스트리트 파이터 류의 게임에 슈퍼히어로들이 주인공이었어요. 마음에 꼭 드는 게임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아주 특별한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을 만들면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었거든요. 바로 슈퍼맨은 영화에서완 달리 발차기를 하지 못한다는 점 말이에요. 그다음으로는 로스트 바이킹 II의 배경 그림 조각들을 작업했던 것 같아요. 전 1994년에 블리자드에 입사하자마자, 미키 닐슨, 데이브 버그렌, 크리스 멧젠과 함께 실무에 참여했어요. 당시에는 멧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죠. 3D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참 짜증 나는 일이었죠. 우린 모두 전통적인 미술 공부를 했던 사람들이었거든요.모든 아티스트들이 3D 맥스를 배워야 했어요. 업계 전반이 3D로 이동하고 있었거든요.전 그 프로그램을 크게 두려워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전 생각했죠. '이야, 이 일을 계속하고 싶긴 한데, 이 프로그램은 도저히 못 쓰겠다.'크리스는 욕을 하더군요.전 그랬죠. '이야, 저 친구 욕도 하네. 회사 내에서 그래도 되는 건가 모르겠군.'그 사람은 의자를 확 빼더니... 카악, 퉤! 어찌나 짜증이 났는지 컴퓨터 화면에 침을 뱉어버렸던 것 같아요.그때 크리스를 보고, '이야, 저 친구 곧 잘리겠는걸.'이라고 생각했죠. 그다음 주에는 사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아니, 저 사람 왜 안 잘렸지?'라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우리는 한꺼번에 여러 일을 했습니다. 다들 그랬죠.각자 여러 가지 일을 맡았어요. 저는 미술 담당이었지만, 접수원이기도 했고요.모두 QA도 직접 했어요. 기술지원 업무도 마찬가지였죠.제가 기술지원을 담당한 두 명 중 하나였어요.기본적으로 낮에는 기술지원 담당으로 전화를 받았고요. 저녁에는 프라이스나 마이크로센터 등 아무 전자제품 상점에서장비를 사 와서 사람들 컴퓨터에 설치했지요.한마디로 일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 당시에는 한 가지 이상의 일을 할 수 있으면 무조건 좋았어요.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뛰어들었죠.슈퍼맨의 죽음과 귀환이라는 게임에 참여하고 있던 아티스트가,다음날 갑자기 저스티스 리그 태스크 포스에 손을 대더니, 또 새로운 소규모 게임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거였어요. 뭐였더라... 바로 워크래프트였어요!그 당시에는 모두들 웨스트우드 스튜디오의 듄2를 정말 좋아했어요.하지만 실시간 전략 게임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웨스트우드를 제외하면 우리가 유일했지요.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발전시키는 일은 상당히 불편한 과정이었어요.기본적인 개념 대부분이 그 당시 게임에 참여하고 있던 여러 명의 디자이너가 생각한 내용을 대충 섞어 놓은 상태였거든요. 고전적인 판타지였지요.그래서 오크와 인간 등 온갖 종류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그런데 너무 작고 비현실적으로 보였어요. 그리고 멍청해 보였죠. 그 이유 중 하나는 말 그대로 그들이 너무 작고 멍청했기 때문입니다.샘 디디에와 선임 아티스트들도 참여했어요. 이렇게 서로의 아이디어와 문화를 한 데 모으는 과정에서아트 디자인 단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죠.재미있고 속도감 있으면서 판타지 느낌이 충만한 게임을 만들어보자고 한 시도였습니다. 작은 사슬 두건을 쓴 친구가 조그만 검을 휘두르는 바보같은 중세 판타지를 만들고 싶진 않았습니다.양쪽에 뿔이 달린 투구를 쓴 오크와 온갖 종류의 사나운 괴물들, 드워프들이 등장하는 끝내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죠. 워크래프트는 큰 히트를 기록했고, 블리자드는 유명 개발사가 되었습니다. 업계의 모두가 깜짝 놀랐죠. 그해 올해의 게임 상을 받으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두 번째 해부터 우린 신출내기 개발사가 아니었어요.워크래프트 II 개발을 시작했을 때 즈음 이런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나네요.더 많은 왕국과 대륙, 그리고 새로운 종족을 추가하면 재미있지 않을까?각각의 역사와 개성을 부여하고 말이죠. 워크래프트 II와 워크래프트 III 사이에는 수년간의 공백 기간이 있었습니다.우린 다른 게임들로부터 이야기 전달 방식의 가치를 배우며 성장했고워크래프트 III를 개발할 때는 거기서 배운 이야기 전달 방식을 게임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우린 자신을 예술가라 생각했어요. 자신을 이야기꾼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담긴 아이디어들이 더 자유롭고 명확하게 떠올랐죠.우리 동영상은 환상적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직도 당시의 동영상들이 게임 업계에서 최고 수준이었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요.제 생각에는 다음 10년이나 20년 동안 우리가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의 한계는 계속해서 높아질 겁니다.제게는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블리자드만의 아트 스타일을 정립하고 싶었거든요.아마 그때가 저와 멧젠이 이야기 전달 방식에 대해 처음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던 때였을 겁니다.제가 생각하는 기준이 꽤 높아서 그런지 자주 야근을 해야 했죠. 사실 시네마틱 부서는워크래프트: 오크 앤드 휴먼의 개발 중에 그 뼈대가 만들어졌던 걸로 기억합니다. 시네마틱 부서엔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조이레이 홀이었죠. 제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최초의 시네마틱 부서 직원입니다. 3D를 다뤄본 사람이 저밖에 없었거든요.지금 보면 참 참 원시적인 기능이지만, 조이레이가 지도를 3D로 확대해서 보는 기능을 만들어 냈습니다.워크래프트 II 개발을 시작하면서 3D를 더 많이 활용했고 사람들을 더 뽑게 되었습니다.저는 블리자드에 일하기 전까지 의대생이었습니다. 근데 블리자드에서 일하던 제 친구가 계속 자랑하더군요. 정말 끝내주는 곳이라고. 그리고 레드힐에 있는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그래, 여기가 내 집이다. 이렇게 끝내주는 곳은 처음이야. 절대 떠나지 말아야겠다.시네마틱 부서는 디아블로를 거의 완성했을 때 만들어졌어요.우리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고, 디아블로의 시작 동영상을 만들었는데 당시엔 꽤 멋진 영상이었죠.지금 보면 민망한데 그때는 진짜 멋졌어요.디아블로의 아이디어는 '콘도르'라는 개발사에서 나왔습니다. 블리자드 노스의 전신이죠.결속력이 탄탄하고 우리처럼 젊은, 아주 훌륭한 팀이었어요.원래 디아블로는 턴제 클레이메이션 롤플레잉 게임으로 개발될 계획이었습니다.그래서 제안했죠. 게임의 핵심 아이디어는 훌륭하다. 하지만 우리가 요즘 3D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는지 한번 보여주겠다.우리가 클레이메이션에서 3D로 방향을 틀어준 셈이죠. 클레이메이션으로 만든 디아블로는 어땠을지 한번 상상해보시죠.개인적으로 디아블로가 좀 어둡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결정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어요.블리자드는 이미 최고의 게임을 두 개나 만든 상태였고,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으니까요.워크래프트 II에선 네트워크 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과 플레이할 수 있길 바랐죠.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디아블로에 상대 찾기 기능을 넣기로 했고 그게 바로 배틀넷의 시초가 된 것이죠.우리는 늘 '원 클릭 접속'에 대해 논의하곤 했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친구들과 함께 플레이할 수 있길 바랐어요.IP 주소를 넣는 식의 복잡한 방식이 아니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식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플레이하며 게임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 말이죠. 우리에겐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우리만 해도 업무 시간이나 업무 외 시간에 모여서 사무라이 쇼다운이나 스트리트 파이터, 모탈 컴뱃을 즐기곤 했거든요.친구들을 발라버리는 기분은 컴퓨터 인공지능을 이길 때와는 비교가 안 되죠. 전 스트리트 파이터 2를 발로만 조작해서 로만 케니를 이긴 사건으로 유명해졌어요.그 후로 누구든 저에게 도전하려면 제가 발로 조작했던 조종기를 사용하게 했어요. 손에 제 발 냄새가 배게 말이죠.그러면 도전자들은 으악, 더러워. 하는 찝찝한 느낌으로 플레이했고 전 그들을 쉽게 발라버릴 수 있었어요. 워크래프트 II를 끝낸 다음에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RTS 게임 개발에 착수했습니다.스타워즈를 보며 자라온 괴짜 중에 그와 비슷한 걸 만들어보고 싶어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스타크래프트는 전혀 다른 우주 대서사시를 창조할 기회였죠. 온갖 황당무계한 아이디어들이 끝없이 쏟아져나왔고 결국 저그와 프로토스가 탄생했습니다. 때마침 시네마틱 부서가 한창 활성화될 때였죠.우리 모두 동영상을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게임의 줄거리가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죠.결국 우린 다방면에 쓰일만한 소재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맷과 드웨인은 이미 도입부 동영상 제작에 들어갔고 테란 사람을 시골 촌뜨기처럼 보이게 하려고 시도했죠. 오크를 우주로 내보내서 오크와 인간의 우주 전쟁을 만들어보자는 식의 아이디어도 검토해봤죠.실제로 심각하게 고려해본 아이디어였습니다. 결국 워크래프트 II 엔진을 가져다 새로운 그래픽을 덮어씌웠습니다. 워크래프트 II에 공상 과학의 스킨을 입혔다고 할까요. 이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 출품하고 유저들에게 보여주니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요? 그래, 오크들이 우주로 갔네? 하는 반응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니요. 절대 우주로 간 오크들이 아닙니다.하고 주장했지요.그 당시에는 자랑스러웠지만 전시회가 끝날 때는 솔직히 좀 창피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한 방 맞은 거죠. 다른 회사에서 뭘 만들고 있는지 봤거든요.얼마 가지 않아 게임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약 1년 동안, 우린 그래픽을 뜯어고쳤고, 더 발전된 쿼터뷰 시점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니 깔끔하고 멋진 화면이 완성되었습니다.전 이런 식으로 말했죠. 그냥 몇 주, 아니 몇 달만 주세요.새로운 엔진을 만들어 내겠습니다.제가 방 밖으로 나오면 스타크래프트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엔진이 만들어져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했죠.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습니다.12월까지 일주일 내내 밤샘으로 일하던 자정마다, 저는 함께 일하던 우리 직원 50명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이제 곧 완성이다.물론 전혀 완성에 가깝지 않았죠.우린 스타크래프트를 1997년에 출시할 계획이었습니다.물론 우주로 간 오크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그보다도 일찍 출시될 거라 생각했고요.팀은 무려 8개월간 밤낮으로 일했습니다. 이제 곧 완성이다, 며칠 안 남았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말이죠.몇 달 동안이나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계속 믿게 되더라고요.아마 4월까지도 출시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전 그때를 애틋하게 기억합니다. 아마 18시간 정도만 자리를 비웠을 겁니다. 그게 가렛이 태어날 때 걸린 시간이거든요. 아, 가렛은 제 아들입니다. 그땐 온 팀이 일에 완전히 몰두한 느낌이었습니다.아내가 소파에서 자는 동안 3살배기 아들을 책상의 키보드 옆에 수건을 깔고 뉘어 놓은 채 일한 적도 있습니다.정말 생산적이고 효율적이었죠.정말 많은 일을 하면서도 뭔가 중요한 일에 착수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일하면서 아기에게 우유를 먹였죠. 그리고 다시 계속 일했습니다.그게 초창기 블리자드 직원의 가족생활이었습니다.그게 밤샘 작업 때 제가 가족들을 챙긴 방법입니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될 만한 중요한 프로젝트였어요.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개발을 시작했을 때, 모든 게 자연스럽게 진화했어요. 우리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결정했을 때는 이미 워크래프트 III 개발에 깊게 착수한 뒤였습니다.언젠가 워크래프트 세계를 현실로 불러오고 끊임없이 계속될 게임 세계 속에서, 여러분 각자가 살아 숨 쉬는 세계의 한 존재가 되는 그날을 꿈꿨습니다.워크래프트 III에서 모습을 갖추어가던 유기적인 세계를 끝없이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세상으로 옮겨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여러 면에서 동시에 개발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팀은 이 소재를 어떻게 MMO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어떤 점을 다르게 만들어야 할까? 빠른 속도의 액션이 가미되길 바랐습니다. 지루하지 않도록요. 그저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는 그런 거 말입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개발을 처음 시작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광활하고, 풍족하고, 다채로운 세상이었죠. 앉아서 플레이하면서도 굉장히 몰두할 수 있고 플레이할 수밖에 없는 매력과 특별하다는 느낌이 드는 세상이었습니다.우리가 처음으로 만든 괴물은 펄볼그였습니다. 펄볼그를 처치하면 이들의 보물 중 하나인 젖꼭지 고리를 떨어뜨리곤 했어요.WoW의 초기 개발은 최고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팀이었죠.제가 입사했던 첫 달이 기억나는군요. 저를 망할 애송이라고 부르더군요.저 다음으로 새 직원을 뽑았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더 이상 망할 애송이라고 불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WoW를 처음 출시했을 때는 우리의 게임 세계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뒤였습니다.사람들도 처음 게임에 뛰어들었을 때 그런 부분에 공감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돌멩이 하나에까지 사랑과 애정이 담긴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보통 게임 개발 과정에서는 임시 모델을 추가할 때그냥 체크무늬 상자를 사용합니다. 적절한 모델이 아니라는 표시죠.그런데 누군가 상자에 제 사진을 붙여놓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물론 그게 더 좋겠죠. 왜냐면 그걸 제가 본다면이 그래픽을 당장 고치라고 아티스트에게 말할 게 아닙니까.알파 버전에서 우리가 처음 받은 버그는 이랬습니다. 왜 빌리 조엘이 날 쳐다보고 있지? 왜 기동순찰대의 펀치가 내 어깨 위에 있지?플레이어의 어깨 보호대가 빠져서 제 얼굴 상자가 어깨 위에 놓여 있었던 거죠.네, 그게 바로 전설적인 셰인 상자의 일화입니다.우리는 오크를 영웅으로 만들 수 있었고 고블린이 도약기를 타고 날아다니게 할 수 있었습니다.말 그대로 크고 우스꽝스러우며, 자유로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였죠. 프로젝트가 끝낼 때쯤, 우리 팀은 60명이었고 5년이란 시간을 쏟아부은 상태였습니다.밤샘 작업도 잦았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밤샘 작업에 쏟았을 겁니다. 가혹하게 일했죠. 출시 2년 전부턴 거의 매일 밤샘으로 작업했으니까요.하지만 그렇게 피땀, 그리고 눈물까지 게임에 쏟아부은 결과 더 바랄 나위 없이 대단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영향력, 규모, 커뮤니티의 크기를 봤을 때자생할만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하지만 그 누구도 그 게임에 의해 회사가 어떻게 변모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게임 운영적 측면에서는요.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모두 WoW를 출시하기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었어요.WoW는 우리 삶과 회사를 변화시켰고, 우리 게임을 변화시켰으며, 산업 자체를 변화시켰습니다.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처음 출시했을 때 최대 접속자 수용치를북미에서만 대략 400,000명 정도로 잡았던 걸로 기억합니다.그리고 한 달 만에 그 수치를 넘어섰죠.첫해에는 실제로 몇 번이나 출고를 멈춰야 했습니다. 모든 플레이어를 지원할 여력이 안 되었으니까요.그래서 더 많은 장비를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습니다. 사용자들이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죠.절대로 미리 예측해서 준비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습니다.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출시는 모든 부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어마어마한 성공으로 수많은 플레이어가 몰려들었고우리는 어떻게든 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업 전체를 한 단계 확장시켜야 했죠. 부족한 개발팀 인력으로 게임 패치를 내보내려고밤낮으로 미친 듯이 노력했습니다.제 기억에 팀2에 합류한 초기 멤버들은우리 일을 무척 사랑하는 열정적인 사람들이었고, 회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J. 알렌 브랙도 그때 팀에 합류했죠.저는 아트 팀의 선임 프로듀서로 팀에 합류했습니다. 저는 워크래프트 I 시절부터 항상 블리자드의 열성팬이었고워크래프트 I, II 멀티플레이 게임을 무척 많이 즐겼습니다.이 신규 인력이 엄청난 에너지를 불러왔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여러분이 만든 게임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실감하시나요?'라는일종의 메시지도 전달했습니다.우리가 불완전한 상태로 출시된 WoW 때문에 의기소침해 있을 때 새로운 재능있는 인재들이 와우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입니다.그때, 우리 수용치를 초과한 첫해의 첫 달에도우리가 백만 명의 플레이어를 불러 모으리라고는감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실제 플레이어 수가 2백만, 5백만 명을 달성하고이제 천만 명까지 돌파했다는 사실은모든 이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엄청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예전에 애드햄이, 언젠가 이 게임은 백만 명의 가입자를 불러모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며 비웃었죠.여기서 일하는 동안 배운 점이 있다면,바로 우리는 미래를 잘 예측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저는 지금의 이 훌륭한 게임을 만들어 내는데 도움을 준모든 이에게 공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정말 엄청난 노력과 헌신이 필요했고절대로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 블리자드에 있는 모두가 노력해서 이루어 낸 결과입니다.아마 많은 사람이 놀라고 충격을 받았을 거로 생각합니다.우리는 심지어 사람들의 인식까지 바꿔놓았으니까요.게임의 사회적인 측면도 바뀌어서 이제는 전혀 새로운 단계로 올라섰습니다.우리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엄청난 일을 해냈고솔직히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건 우리의 차세대 MMO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안녕하세요, 저는 스타크래프트 II 프로덕션 디렉터, 크리스 시거티입니다.제가 블리자드에서 처음 맡은 업무는 QA 업무였습니다. 저는 당시에 대학생이었는데 여름 방학 때 할 일을 찾고 있었죠. 저를 블리자드로 이끈 건 바로 게임이었습니다.스타크래프트 II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였고 첫 단계는 우리가 스타크래프 II 작업을 원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오리지널 스타크래프트 발매로부터 스타크래프트 II 발매까지는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아, 스타크래프트 II 작업은 언제 시작했느냐고요?그러니까... 7년 전? 워라고요? 7년이요?제가 기억하기에는 당시에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스타크래프트 II를 만들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제가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어떤 문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좋아요, 스타크래프트 II를 만들 거면 우리는 전통을 이어나갈 겁니다. 넓은 범위로 오리지널 스타크래프트의 플레이 느낌과 방식을, 물론 3D로 따를 것입니다.그리고 싱글플레이어로 정말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낼 겁니다.온라인 서비스로도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낼 겁니다.이야기 전개는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게임의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스타크래프트 II에서도 분명히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었죠.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갈고 닦은 유연한 이야기 전개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정말 훌륭한 팀입니다. 개성이 무척 강한 새미라는 친구가 팀을 이끌고 있는데,새미는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뛰어난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아주 긍정적인 방식으로 말이죠.정오 전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일은 정말 대단한 헌신이 필요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모두 잘 아시다시피, 아티스트는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게임을 디자인할 수 있죠.하지만 지금은 전문 디자이너들이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저는 롭 팔도 밑에서 오리지널 스타크래프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유닛과 구조물 작업을 하고, 임무와 관련된 작업도 했습니다.그리고 나서 스타크래프트 II의 리드 역할을 맡게 되었죠.신규 인력을 많이 채용했고 밸런스 팀을 구성해서본격적으로 게임의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사실 제가 오리지널 스타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II의 모든 인공 지능 작업을 했습니다.저는 컴퓨터가 부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았습니다.마침내 스타크래프트 II에서 모든 유형의 부정행위를,유효한 모든 부정행위를 없앴습니다.그래서 이제는 실제 플레이어와 컴퓨터를 구분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모두가 10년 넘게 즐겨온 이 고전 게임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제 생각에는 개발팀에게는 이 과업을 훌륭히 완수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스타크래프트라는 이름에 걸맞는 게임을 만들어내야 했으니까요.오리지널 스타크래프트는 역대 최고의 PC 게임 중 하나이고역대 최고의 전략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오리지널 스타크래프트를 발매했을 때, 모두가 그 게임이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았고그리고 그만큼 기대치도 높아졌습니다.저는 스타크래프트 II에서 이야기 전개를 통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멀티플레이어 모드 또한 훌륭하고 배틀넷도 아주 훌륭합니다.스타크래프트가 이만큼 발전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블리자드는 이제 20주년을 맞았고 회사의 역사가 이쯤 되면과거를 되돌아볼 뿐만 아니라 블리자드가 남긴 유산을 볼 수 있습니다.미래, 미래는 광대합니다.20년은 긴 시간이지만 우리는 지금 중책을 맡은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 다음에도오랫동안 블리자드의 역사가 지속하길 바랍니다..그러니까, 예를 들어 디즈니 같은 회사를 보면디즈니는 80년 가까이 된 기업입니다. 디즈니가 제작한 작품 중에 초기 20년 동안 완성한 작품은 채 반도 되지 않고,디즈니랜드 또한 없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우리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고, 황금기가 아직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가장 놀라운 게임을 경험하도록그런 게임을 개발하고 창조하는 일이고, 그것은 바로 우리의 DNA 일부이며앞으로도 그런 노력을 오랫동안 지속할 것입니다.예전엔 지금과 상황이 달랐습니다.사실 15년 전에는 모든 것이 달랐지만, 우린 진화를 통해 이 자리까지 왔고 아직도 진화하고 있습니다.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절대 정적이지 않고 항상 역동적이며, 발전하고, 진화합니다.우리 모두는 우리의 모든 제품을 사랑합니다. 그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세상에는 수많은 회사가 있고, 사람들은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고 보수를 받습니다.하지만 저는 직원들이 뚜렷한 신념을 갖고 업무에 임하는 그런 회사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그 회사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청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회사 말이죠.제게는 그 작은 파란색 회사 로고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최고의 게임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고 헌신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 한다른 누구도 제공할 수 없는 최고의 재미를 선물하면서 그들은 앞으로도 멋지게 해낼 것입니다.저는 우리의 작업 방식과 현재 작업 중인 게임들이 무척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우리는 다른 그 어떤 회사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와 있으며전 세계 온라인 게임의 선두 주자라고 생각합니다.우리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이끌고 있으며새로운 게임 방식 패러다임이나 새로운 기술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수천 명의 플레이어를 연결할 능력도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나게 즐거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겪은 모든 변화와 성장, 그리고 세계화를 통해우리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회사가 되었습니다.언젠가부터 우리가 만드는 게임의 발전 속도와 복잡성, 규모가전 세계에서 우리의 게임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의 숫자를따라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블리자드의 목표 중 하나는 우리가 만든 훌륭한 게임을세계 곳곳에 있는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입니다.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 지사들이 정말 멋진 이유 중 하나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제품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고 블리자드 문화를 사랑하고 있습니다.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압도적인 위업으로 블리자드는 어쩌면 이 프랜차이즈를 최대한 오래 지켜내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분명히 다른 작업이 진행 중인 것도 알고,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런 팀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바로 덤벼들어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모든 고객을 뺏어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그렇게 할 테니까요.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블리자드에 오랫동안 근무한 우리 모두가 시간을 내서 새로운 직원들과 대화하며 우리의 문화와 가치를 가르쳐줘야 할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그리고 반드시 블리자드 본연의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 사실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음 세대 직원들에게 가르치고 이 회사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런 가치를 언제나 이 회사의 핵심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합니다.그것이 바로 블리자드의 과거, 현재, 미래의 기반입니다.우리의 기반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고, 지금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기억하며무슨 일을 하든 그 사실을 마음속에 간직한다면 블리자드의 미래는 분명히 밝을 것입니다.